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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트디자이너 이호. 그는 욕심이 많다. 현재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폰트디자이너로 그 중심에 서있으면서도 말이다. 디자인 뿐만 아니라 디자인을 통한 기획, 마케팅 등 배워야 할 것들이 아직 너무 많다고 푸념 아닌 푸념을 늘어놓는 그는 디자이너 이호가 아닌 하나의 브랜드로서의 이호를 꿈꾼다. 단순히 디자인만 잘하는 디자이너가 아니라 한글디자인 발전에 필요한 것이라면 모든 것을 수용하고 소화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춘 미래의 디자이너. 그것이 그가 말하는 브랜드 이호이다.
인터뷰. 길영화 기자(barry@sandol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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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입문했을 당시에는 폰트 디자인이라는 것이 매우 생소했을 것이라 생각되는데, 이 길에 접어들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으신가요
돌이켜 생각해보면 폰트디자인을 시작하는데 특별한 계기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대학교 때 광고 디자인을 전공했는데, 디자인이라는 것이 너무나 재미있어서 푹 빠져 지냈었습니다. 그렇게 디자인만 생각하며 대학시절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졸업 시즌이 다가왔고, 취업을 준비하던 제게 한재준 교수님(지금은 서울여대에 계시는)께서 폰트디자인을 한번 해보지 않겠냐고 권했었죠. 그 당시 전 디자인이라면 분야를 막론하고 모든지 해보고 싶었고, 폰트디자인이라는 특수한 분야에도 상당한 흥미를 가지고 있던 터라 별다른 고민 없이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평범하게 시작되었지만 폰트디자인이 저랑 잘 맞았는지 어느새 17년 째 이 일을 하고 있네요.
17년 동안 한 길만 걸어오는 것에 어려움도 많았을 것이라 생각되는데, 혹시 후회를 해보신 적이나 슬럼프에 빠지신 적은 없으신가요
슬럼프는 가끔 있었지만 폰트디자이너가 된 것에 후회를 해본 적은 단 한번도 없었습니다. 오랜 시간 하나의 일에만 매진하다 보니 슬럼프가 없을 수가 없더군요. 가끔이지만 슬럼프에 빠질 때 마다 한재준 교수님을 찾아갑니다. 교수님은 이제 저를 보고 제자가 아닌 같은 길을 함께하는 동료로써 고민을 함께 해주시곤 하는데, 존경하는 교수님이 동료로서 진심 어린 격려를 해주신다는 사실 자체로도 잠깐 빠져들었던 슬럼프나 고민은 말끔히 사라지곤 합니다.
현재는 산돌커뮤니케이션의 주축을 이루는 디자이너이신데, 산돌과의 인연은 어떻게 이뤄졌나요?
제가 산돌에 입사한 것이 2002년이었습니다. 그때 이미 산돌은 윤디자인과 더불어 한국 폰트시장을 대표하는 회사였습니다. 폰트디자이너로써 그런 회사에서 일하고 싶은 마음이 당연히 있었고, 우연한 기회에 산돌에 다니던 후배를 통해 산돌 디자이너들과 친분을 가지게 되었죠. 그러던 중 산돌에서 디자이너를 새로 필요로 했고, 전 망설임 없이 포트폴리오를 들고 찾아갔습니다. 다행히 좋은 결과로 입사를 하게 되어 현재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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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자이너 이호가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공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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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돌에서 처음 작업하셨던 프로젝트는 무엇인가요
광수패키지였습니다. 제가 오기 전에 광수체는 이미 산돌의 대표 폰트였습니다. 기존의 폰트와 달리 광수체는 모듈이 획일화되지 않고 자유로움을 강조한 것이 특징이었는데, 이를 이용해 광수체를 기본으로 한 광수에세이, 광수명조, 광수뽀리, 광수블러 등 다양한 폰트로의 파생이 가능했고, 그 작업을 제가 맡았었습니다. 처음 작업한 프로젝트가 산돌을 대표하는 폰트라는 사실에 부담을 가지기도 했지만, 그만큼 자부심을 가지고 공들여 만든 폰트이기도 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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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본 모듈을 기반으로 다양한 변화가 가능했던 광수패키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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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전용서체 프로젝트에도 많이 참여하신 걸로 아는데 무엇이 있었나요
기업전용서체는 팀 작업이 주를 이루기 때문에 산돌에서 진행한 거의 모든 기업전용서체 프로젝트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중 제가 주도가 되어 작업한 프로젝트를 살펴보자면 CJ전용서체, 현대카드, 삼성서체, 중앙일보 등이 있습니다. 거의 실무적인 작업들을 책임졌고, CJ전용서체 같은 경우는 제가 혼자 도맡아 작업한 프로젝트였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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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호가 참여한 대표 기업 전용서체 프로젝트. 위에서부터 중앙일보서체, 삼성전용서체, 현대카드서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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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가 있다면
아무래도 1년 동안 시작부터 끝까지 제 손을 거쳐 만들어진 CJ전용서체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CJ전용서체는 패키지 전용으로는 국내 최초의 사례였습니다. 당시 먹거리 시장에서 패키지 디자인은 차별화 되기 매우 힘든 구조였는데, 그 이유는 괜찮은 패키지 디자인이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으면 곧바로 경쟁업체에서 비슷한 디자인을 들고 나왔기 때문입니다. CJ에서는 이런 문제로 지속적으로 고민하다 새로운 방편으로 폰트를 생각한 것이죠. CJ만의 폰트를 만들면 경쟁업체에서 따라 하기 힘든 확고한 아이덴티티가 형성될 것이라 생각하고 선택한 전략이었던 것입니다. 이는 저에겐 디자이너로서, CJ는 클라이언트로서 각각 새로운 도전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쉽지만은 않은 프로젝트였습니다. 시안 결정에만 몇 개월이 걸렸을 정도로 신중하게 진행된 CJ전용서체는 식감을 표현한 날씬한 글자비례로 가독성을 살린 맛깔체와 캘리그라퍼 이상현의 자연스러운 붓맛을 살린 손맛체로 CJ의 아이덴티티를 표현하는데 성공적으로 완성되었습니다. 힘들었던 작업이었지만 이 프로젝트를 통해 실무적 디자인 뿐만 아니라 클라이언트와의 관계 등 디자인 외적인 측면에서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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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맛깔체가 사용된 CJ패키지 디자인 |
▲ 캘리그라퍼 이상현의 붓글씨 맛이 살아있는 손맛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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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이언트와의 관계를 언급하셨는데, 디자이너 입장에서 그 중요성이 크게 느껴지시나요
의뢰를 받은 작업에서 클라이언트와의 관계는 당연히 중요합니다. 클라이언트가 만족할 만한 디자인을 주는 것이 디자이너의 역할이죠. 클라이언트로 하여금 나와 일하는 것이 충분한 가치가 있고, 무언가 새로운 것을 얻는다는 느낌을 받게 함으로써 다시 한번 디자이너 이호를 찾게 만드는 것. 이런 일들이 계속 이어지면 시장에서 저와 회사의 신뢰와 가치는 자연스레 올라가기 마련입니다. 이것이 디자이너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영업이자 회사에 필요한 덕목이라 생각합니다.
클라이언트와의 관계를 너무 중요시하다 보면 디자이너 자신만의 색은 좀 약해지지 않을까요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의뢰를 받은 프로젝트가 아닌 회사 내부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시도되는 작업에서는 저만의 감성을 한껏 표현합니다. 특히 아기자기하고 재미있는 형태들을 좋아하는데, 저의 초창기 작품들인 개성체, 아롱체, 해뜰날체 등과 최근에 산돌에서 출시한 상하이체 등이 저만의 재미와 감성이 잘 표현된 작품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개성체 같은 경우는 폰트디자이너로 처음 작업했던 작품이라 그런지 완성도 여부를 떠나 아직까지 애착이 많이 가는 폰트이기도 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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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호의 개성 넘치는 포트폴리오 모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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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적으로 세종대왕 탄생일 기념 공모전에 출품했던 진고딕과 진명조. 기존 고딕과 명조의 성격을 서로 바꾸어 부드러운 고딕, 딱딱한 명조체로 재미있게 표현한 작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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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호와 얘기를 나누면서 볼 수 있었던 재미있는 이름들을 가진 그의 습작 작품들. 순서대로 칵테일체, 키치체, 스네이크체(모두 가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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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 사인 전문 매거진 팝사인에 기고를 해오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어떤 인연이 있었나요
6년 전 간판용 서체를 조사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우연한 기회로 팝사인에서 간판용 서체에 대한 연재기사를 의뢰 받았습니다. 디자이너 입장에서 가볍게 간판 사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 것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게 된 것입니다. 팝사인에서 저처럼 오래 연재한 사람은 없다고 하는데, 제가 글을 잘 쓰는 편은 아니고, 폰트디자이너의 시각으로 바라 본 표현이 사람들에게 어필되었나 봅니다. 그 동안 지역별, 분야별로 간판 서체에 대한 이야기를 끄집어 내면서 손수 사진도 찍고, 직접 자료를 조사하고 정리하면서 저에게도 많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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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팝사인에 연재되고 있는 이호의 글. 글을 잘 쓰시겠다는 말에 손사래를 치지만 6년간 쌓인 내공으로 글 솜씨 역시 상당한 수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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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트디자이너로서 국내 폰트시장의 미래에 대해 많은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 국내 폰트시장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생각이 있으시다면
지금까지 폰트시장이 양적으로는 풍부해졌지만, 질적으로는 큰 발전이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크고 작은 폰트회사들이 생겨나고, 경쟁이 심화될 것이기에 이 같은 상황은 당분간 계속 이어질 것입니다. 특히 기업전용서체 시장의 경쟁은 더욱 심화되어 저가수주 경쟁의 우려까지 보이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지향해야 할 것은 양적인 팽창이 아닌 질적인 성숙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의 폰트를 만들어도 사용자들과 개발자들 양쪽에 모두 가치가 있는 작업들이 필요합니다. 한글 본문체에 대한 꾸준한 연구가 이어져야 하는 것도 하나의 예가 될 수 있습니다. 이는 당장에 적은 돈보다는 폰트시장 전체의 가치를 높이는 일이 될 것이므로, 결과적으로 업계와 사용자들 모두에게 이득이 될 것입니다.
현재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 주신다면
우선 얼마 전에 출시한 산돌 헤드라인 시리즈의 후속 시리즈를 제작 중에 있습니다. 동아시아 도시에 이어 이번에는 유럽의 도시들로 구성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기업전용서체로는 래미안체에 대한 시안을 제작 중에 있습니다. 이는 아파트 브랜드로는 처음 시도되는 것으로 그만큼 조심스럽고 기대도 큰 프로젝트입니다. 요즘 아파트들은 타운 형태로 하나의 작은 마을을 형성한다고 볼 수 있는데, 그것을 대표하는 서체가 만들어진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폰트디자이너로써 미래의 다짐과 역할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최근에 기획, 마케팅 쪽으로 많은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디자인은 물론이고 기획력과 마케팅 능력도 겸비해야 미래에도 경쟁력 있는 디자이너로 남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디자인은 혼자만의 작업이 아닙니다. 아무리 빼어난 디자인이어도 클라이언트가 만족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반 쪽짜리 디자인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디자인 자체의 품질이지만, 이제 그에 못지않게 디자이너 자신과 자신의 디자인을 마케팅 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할 때입니다. 조금 전에도 말씀 드렸듯이 클라이언트에게 가치를 안겨주고 다시 찾게 만드는 것. 이런 경험들이 축적되면 이름만으로도 이 분야에서 신뢰감을 주는 하나의 브랜드, 즉 브랜드 이호로서의 나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나아가서는 한글 디자인 발전에 필요한 것이라면 모든 것을 수용하고 소화할 수 있는 열린 자세로 브랜드 이호가 훗날 한글 디자인의 중심 가치로써 남겨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