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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ul Smith(폴 스미스)

Posted 2010/10/12 13:20, Filed under: People


폴 스미스 로고
- 오랫동안 단순한 줄무늬를 조합해서 사용하다가, 폴 스미스는 거기에 28가지의 색상을 입힌 ‘최종 줄무늬(definitive stripe)’를 탄생시켰다. 이후 이 줄무늬를 14가지 색상으로 줄여서 프린트하였다.
image courtesy designboom


1947년 영국 노팅엄 출생. 장래에 대한 아무런 설계나 자격증 취득도 없이16살의 나이에 학업을 중단한 후, 아버지의 등쌀에 못 이겨 지역의 의류매장에서 허드렛일을 시작하였다. 1970년, (현재의 아내인) 여자친구 폴린 드나이어(Pauline Denyer)의 격려에 힘입어 그간 모은 소액의 저금으로 노팅엄에 작은 부티크를 오픈하였다. 이후 야간 강좌로 재단을 배우기 시작한 그는 (RCA에서 패션을 전공한) 폴린의 도움을 받아, 마침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창작할 수 있는 솜씨를 갖추게 되었다. 그리하여 1976년, 자신의 이름 ‘폴스미스’를 상표로 파리에서 첫 번째 남성복 컬렉션을 선보였다. 현재는 폴스미스, 폴스미스 우먼, PS by 폴스미스, 폴스미스 진, 폴스미스 런던, (일본의) 알뉴볼드(R.Newbold), 폴스미스 액세서리, 폴스미스 슈즈, 폴스미스 향수, 폴스미스 시계, 폴스미스 펜, 폴스미스 가구 등 총 열 두 가지 컬렉션을 선보이고 있다. 이밖에 폴스미스 러그와 자기, 안경, 향수 등이 라이센스 계약 하에 제작되고 있다. 그의 컬렉션은 전세계 35개국에서 판매되고 있으며, 영국 국내에 14개의 매장을 두고 있다. 이외에도 폴 스미스 매장은 런던, 노팅엄, 파리, 밀라노, 뉴욕, 홍콩, 싱카포르, 타이완, 필리핀, 한국, 쿠웨이트, UAE 등 세계 곳곳에서 만나볼 수 있으며, 일본 전역에만 총 2백여 개의 매장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 2000년에는 영국의 패션 산업에 기여한 공로로 엘리자베스 2세로부터 기사 작위를 수여 받기도 하였다.

http://www.paulsmith.co.uk


폴 스미스
portrait ⓒ designboom


하루 중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언제입니까?
사실 전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걸 좋아합니다. 정말 일찍 일어나지요. 평소 아침 5시 반이나 6시에 집을 나와 수영을 하러 가요. 집에 있을 때뿐 아니라 파리나 도쿄, 그 어디에 있을 때에도 수영장을 찾아 가죠. 하루 중 최고의 시간이라 할 순 없을지 몰라도, 무척 좋아하는 건 맞습니다.

주로 어떤 음악을 즐겨 들으시나요?
요즘은 샤를로트 갱스부르의 새 앨범을 듣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제인 버킨과 세르주 갱스부르의 딸이죠. 배우로서도 좋지만, 음악 역시 못지 않게 좋더군요. 그밖에 플릿 폭시스(Fleet Foxes)와 밥 딜런도 듣고 있습니다. 그날그날의 기분에 따라 플로렌스 앤 더 머신(Florence and the Machine)의 음악이라던가, 여러 가지 다양하게 듣죠.

라디오도 들으십니까?
수영하러 가면서 차 안에서 듣습니다. 주로 뉴스를 들으면서, 그날그날 세상에서 일어나 사건 같은 것들을 챙깁니다.

침대맡에 두고 보는 책은 어떤 것인가요?
책을 그리 자주 읽지는 않습니다. 제가 집중하는 범위가 워낙 협소해서요. 가끔 책을 볼 때는, 자서전이나 전기를 즐겨 읽는 편이에요. 그런 책을 보면 사람들이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헤쳐나갔나 알 수 있거든요. 정말 흥미롭죠. 지금까지 이브 생 로랑이나 크리스티앙 디오르, 샤넬 같은 이의 전기를 읽었고, 이와 완전히 대조적인 하니프 쿠레이시(Hanif Kureishi)의 책도 많이 읽었습니다. 하니프는 제 친구이기도 한데, 그의 전작을 모두 읽었어요. 대부분 성(性)이나 1960년대, 로큰롤에 대한 이야기죠. 얼마 전엔 패티 스미스(Patty Smith)의 신작 <저스트 키즈 Just Kids>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실제 그녀와는 잘 아는 사이로, 최근에 인터뷰를 하기도 했고 원래부터 팬이기도 합니다. 대개 전 책을 읽을 때 대강 훑어보는 편이지, 처음부터 끝까지 잘 읽어보진 않아요. 그런 점에선 좀 못된 버릇이긴 한데, 반대로 제 아내는 정독을 하는 타입이죠. 프루스트의 책도 읽었고, <전쟁과 평화> 같은 묵직한 책도 아주 많이 읽어요. 그런 아내에게 귀동냥을 많이 합니다.


덴마크의 주방용품 브랜드 스텔톤(Stelton)의 창사 50주년 기념으로 선보인 테이블웨어 컬렉션, 2010
- 폴 스미스가 스텔톤의 아르네 야콥센 실린다(Arne Jacobsen Cylinda) 컬렉션을 참신하고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탄생시켰다.
image courtesy designboom



폴 스미스의 대표작인 ‘딥 다이 밀러 브로그(Dip-Dye Miller Brogue)’, 2009
- 가죽을 염료에 담가 대형 나무통 안에 넣고 회전시켜, 인상적인 색상으로 염색하였다.
image courtesy designboom




구두 안쪽의 꽃무늬 장식과 컬러 구두끈
image courtesy designboom



패션 관련 잡지를 읽어 보시나요?
아니요. 잡지는 절대 보지 않습니다. 남들 얘기로 제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하고 싶진 않아요.

새로운 뉴스 같은 것은 어디서 들으십니까?
라디오로나 듣지, 인터넷은 전혀 이용하지 않습니다. 이메일도 사용하지 않죠. 3명의 어시스턴트가 제 대신 이메일을 처리해 줍니다.

직업상 여성들의 패션을 눈여겨보실 텐데요, 특별히 선호하는 스타일이 있다면요?
처음 저희 옷을 여성들이 입게 된 것은, 남성 고객들의 연인이나 부인들로부터 많은 요청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분들이 저희 스웨터나 레인코트, 재킷 같은 것을 종종 구입하곤 했죠. 당시는 옷을 넉넉한 사이즈로 입는 게 유행이었으니까요. 그 후 이번에는 옷을 약간 작게 입는 트렌드가 생겨나자, 고객들이 여성복은 없느냐고 묻더군요. 처음에 저희가 내놓은 옷은 사실상 여성들을 위한 남성복이었고, 그런 옷을 원하는 여성은 전체 중 5분의 1밖에 안됐습니다. 최근에는 많이 변했죠. 전 여전히 남성적인 느낌의 여성복을 가장 선호하지만, 그래서는 살아남을 수가 없더군요. 그래서 좀 더 여성적인 패션도 많이 내놓고 있습니다.

특별히 피하는 옷차림이 있으신가요?   
제게 어울리는 옷을 입으려고 노력하다 보니, 수트나 재킷을 즐겨 입는 편입니다. 지퍼가 달린 캐주얼한 옷보다는 좀 더 정돈된 차림이 나아 보이는 것 같아서요.

애완 동물을 기르시나요?
15년 동안 개 두 마리를 키웠었는데, 걔들이 죽고 난 후엔 더 이상 키우고 싶지 않더군요. 일년에 7개월 정도를 출장 중이다 보니, 아내에게만 너무 짐을 지우는 것 같아서요.

어릴 적부터 디자이너가 되는 게 꿈이었나요?
아닙니다. 패션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 건 18, 19살 무렵이었어요. 그 전에는 운동선수가 되고 싶었지요. 사이클 선수요.

작업은 주로 어디서 하시나요?
언제 어디서나 작업을 합니다. 제 주머니는 늘 종이쪽지로 가득 차 있지요. 거의 매일 저희 어시스턴트 디자이너들과 만나 일을 진행합니다. 늘 일상적으로 하는 일이지, 의식적으로 어디 자리를 잡고 앉아 디자인을 한다던가 그렇진 않아요.

다른 디자이너들과 작업에 대해 논의를 하시나요?
아니요. 디자이너들을 많이 알긴 하지만, 같이 논의를 하진 않습니다. 그냥 서로 인사 정도만 할 뿐, 일 얘기는 하지 않아요.

당신의 스타일을 어떤 말로 묘사할 수 있을까요? 친한 친구가 설명한다면 어떻게 표현할지요.
폴 스미스를 늘 표현해주는 말이 있지요. 그건 바로 고전적인 것을 살짝 비튼다는 것입니다. 겉에서 보기엔 아주 단순하고 착용하기에도 쉽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화사한 색상의 안감이나 보라색 단춧구멍 같은 것을 발견하게 되죠. 단추 색깔이 모두 다른 경우도 있고요. 그런 식으로 늘 유머 감각을 부여하거나 살짝 비틀어주는 거죠.


‘더 바이어드(The Byard)’ 슬림 핏 수트, 폴 스미스 런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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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언잭 우산,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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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스미스가 디자인한 에비앙 생수병,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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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티스트라이프 시그너처(Multistripe Signature) 자전거 안장, 2009
- 예전의 취미를 되살리듯 일본의 자전거 안장 전문업체 카시막스(Kashimax)와 함께 작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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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스미스 스키, 에델비저(Edelwise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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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스미스 크리켓 볼,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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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스미스가 2010 스톡홀름 가구박람회에서 선보인 휴게 공간. 개성적인 폴 스미스 부티크의 사진들로 방 전체를 장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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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취물(Sent Things)'
- “그 동안 포장도 없이 그 자체에 우표를 붙이고 주소를 써서 계속 내게 보내진 물건들이다. 우체국이 이를 말리지 않고 수취인에게 배달해 줬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 폴 스미스,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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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취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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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스미스가 아르네 야콥슨의 고전 ‘시리즈 세븐(Series 7)’ 의자에 바치는 오마주, 2005
- 큰 인기를 끈 프리츠 한센(Fritz Hansen) 사의 스태커블 의자를 재해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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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스미스 밀라노 본사, 2007 밀라노 디자인 위크 기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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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lated from designboom.com

http://www.designflux.co.kr/other_sub.html?code=121&board_value=people

2010/10/12 13:20 2010/10/12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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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돌커뮤니케이션 이호

폰트디자이너 이호. 그는 욕심이 많다. 현재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폰트디자이너로 그 중심에 서있으면서도 말이다. 디자인 뿐만 아니라 디자인을 통한 기획, 마케팅 등 배워야 할 것들이 아직 너무 많다고 푸념 아닌 푸념을 늘어놓는 그는 디자이너 이호가 아닌 하나의 브랜드로서의 이호를 꿈꾼다. 단순히 디자인만 잘하는 디자이너가 아니라 한글디자인 발전에 필요한 것이라면 모든 것을 수용하고 소화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춘 미래의 디자이너. 그것이 그가 말하는 브랜드 이호이다.

인터뷰. 길영화 기자(barry@sandoll.co.kr)

산돌커뮤니케이션 이호

처음 입문했을 당시에는 폰트 디자인이라는 것이 매우 생소했을 것이라 생각되는데, 이 길에 접어들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으신가요

돌이켜 생각해보면 폰트디자인을 시작하는데 특별한 계기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대학교 때 광고 디자인을 전공했는데, 디자인이라는 것이 너무나 재미있어서 푹 빠져 지냈었습니다. 그렇게 디자인만 생각하며 대학시절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졸업 시즌이 다가왔고, 취업을 준비하던 제게 한재준 교수님(지금은 서울여대에 계시는)께서 폰트디자인을 한번 해보지 않겠냐고 권했었죠. 그 당시 전 디자인이라면 분야를 막론하고 모든지 해보고 싶었고, 폰트디자인이라는 특수한 분야에도 상당한 흥미를 가지고 있던 터라 별다른 고민 없이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평범하게 시작되었지만 폰트디자인이 저랑 잘 맞았는지 어느새 17년 째 이 일을 하고 있네요.

17년 동안 한 길만 걸어오는 것에 어려움도 많았을 것이라 생각되는데, 혹시 후회를 해보신 적이나 슬럼프에 빠지신 적은 없으신가요

슬럼프는 가끔 있었지만 폰트디자이너가 된 것에 후회를 해본 적은 단 한번도 없었습니다. 오랜 시간 하나의 일에만 매진하다 보니 슬럼프가 없을 수가 없더군요. 가끔이지만 슬럼프에 빠질 때 마다 한재준 교수님을 찾아갑니다. 교수님은 이제 저를 보고 제자가 아닌 같은 길을 함께하는 동료로써 고민을 함께 해주시곤 하는데, 존경하는 교수님이 동료로서 진심 어린 격려를 해주신다는 사실 자체로도 잠깐 빠져들었던 슬럼프나 고민은 말끔히 사라지곤 합니다.

현재는 산돌커뮤니케이션의 주축을 이루는 디자이너이신데, 산돌과의 인연은 어떻게 이뤄졌나요?

제가 산돌에 입사한 것이 2002년이었습니다. 그때 이미 산돌은 윤디자인과 더불어 한국 폰트시장을 대표하는 회사였습니다. 폰트디자이너로써 그런 회사에서 일하고 싶은 마음이 당연히 있었고, 우연한 기회에 산돌에 다니던 후배를 통해 산돌 디자이너들과 친분을 가지게 되었죠. 그러던 중 산돌에서 디자이너를 새로 필요로 했고, 전 망설임 없이 포트폴리오를 들고 찾아갔습니다. 다행히 좋은 결과로 입사를 하게 되어 현재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산돌커뮤니케이션 이호

▲ 디자이너 이호가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공간

산돌에서 처음 작업하셨던 프로젝트는 무엇인가요

광수패키지였습니다. 제가 오기 전에 광수체는 이미 산돌의 대표 폰트였습니다. 기존의 폰트와 달리 광수체는 모듈이 획일화되지 않고 자유로움을 강조한 것이 특징이었는데, 이를 이용해 광수체를 기본으로 한 광수에세이, 광수명조, 광수뽀리, 광수블러 등 다양한 폰트로의 파생이 가능했고, 그 작업을 제가 맡았었습니다. 처음 작업한 프로젝트가 산돌을 대표하는 폰트라는 사실에 부담을 가지기도 했지만, 그만큼 자부심을 가지고 공들여 만든 폰트이기도 합니다.

산돌커뮤니케이션 이호

▲ 기본 모듈을 기반으로 다양한 변화가 가능했던 광수패키지

기업전용서체 프로젝트에도 많이 참여하신 걸로 아는데 무엇이 있었나요

기업전용서체는 팀 작업이 주를 이루기 때문에 산돌에서 진행한 거의 모든 기업전용서체 프로젝트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중 제가 주도가 되어 작업한 프로젝트를 살펴보자면 CJ전용서체, 현대카드, 삼성서체, 중앙일보 등이 있습니다. 거의 실무적인 작업들을 책임졌고, CJ전용서체 같은 경우는 제가 혼자 도맡아 작업한 프로젝트였습니다.

산돌커뮤니케이션 이호

▲ 이호가 참여한 대표 기업 전용서체 프로젝트. 위에서부터 중앙일보서체, 삼성전용서체, 현대카드서체.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가 있다면

아무래도 1년 동안 시작부터 끝까지 제 손을 거쳐 만들어진 CJ전용서체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CJ전용서체는 패키지 전용으로는 국내 최초의 사례였습니다. 당시 먹거리 시장에서 패키지 디자인은 차별화 되기 매우 힘든 구조였는데, 그 이유는 괜찮은 패키지 디자인이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으면 곧바로 경쟁업체에서 비슷한 디자인을 들고 나왔기 때문입니다. CJ에서는 이런 문제로 지속적으로 고민하다 새로운 방편으로 폰트를 생각한 것이죠. CJ만의 폰트를 만들면 경쟁업체에서 따라 하기 힘든 확고한 아이덴티티가 형성될 것이라 생각하고 선택한 전략이었던 것입니다. 이는 저에겐 디자이너로서, CJ는 클라이언트로서 각각 새로운 도전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쉽지만은 않은 프로젝트였습니다. 시안 결정에만 몇 개월이 걸렸을 정도로 신중하게 진행된 CJ전용서체는 식감을 표현한 날씬한 글자비례로 가독성을 살린 맛깔체와 캘리그라퍼 이상현의 자연스러운 붓맛을 살린 손맛체로 CJ의 아이덴티티를 표현하는데 성공적으로 완성되었습니다. 힘들었던 작업이었지만 이 프로젝트를 통해 실무적 디자인 뿐만 아니라 클라이언트와의 관계 등 디자인 외적인 측면에서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산돌커뮤니케이션 이호

산돌커뮤니케이션 이호

▲ 맛깔체가 사용된 CJ패키지 디자인

▲ 캘리그라퍼 이상현의 붓글씨 맛이 살아있는 손맛체

클라이언트와의 관계를 언급하셨는데, 디자이너 입장에서 그 중요성이 크게 느껴지시나요

의뢰를 받은 작업에서 클라이언트와의 관계는 당연히 중요합니다. 클라이언트가 만족할 만한 디자인을 주는 것이 디자이너의 역할이죠. 클라이언트로 하여금 나와 일하는 것이 충분한 가치가 있고, 무언가 새로운 것을 얻는다는 느낌을 받게 함으로써 다시 한번 디자이너 이호를 찾게 만드는 것. 이런 일들이 계속 이어지면 시장에서 저와 회사의 신뢰와 가치는 자연스레 올라가기 마련입니다. 이것이 디자이너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영업이자 회사에 필요한 덕목이라 생각합니다.

클라이언트와의 관계를 너무 중요시하다 보면 디자이너 자신만의 색은 좀 약해지지 않을까요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의뢰를 받은 프로젝트가 아닌 회사 내부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시도되는 작업에서는 저만의 감성을 한껏 표현합니다. 특히 아기자기하고 재미있는 형태들을 좋아하는데, 저의 초창기 작품들인 개성체, 아롱체, 해뜰날체 등과 최근에 산돌에서 출시한 상하이체 등이 저만의 재미와 감성이 잘 표현된 작품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개성체 같은 경우는 폰트디자이너로 처음 작업했던 작품이라 그런지 완성도 여부를 떠나 아직까지 애착이 많이 가는 폰트이기도 합니다.

산돌커뮤니케이션 이호

▲ 이호의 개성 넘치는 포트폴리오 모음

산돌커뮤니케이션 이호

▲ 개인적으로 세종대왕 탄생일 기념 공모전에 출품했던 진고딕과 진명조. 기존 고딕과 명조의 성격을 서로 바꾸어 부드러운 고딕, 딱딱한 명조체로 재미있게 표현한 작업

산돌커뮤니케이션 이호

▲ 이호와 얘기를 나누면서 볼 수 있었던 재미있는 이름들을 가진 그의 습작 작품들. 순서대로 칵테일체, 키치체, 스네이크체(모두 가명)

오랜 시간 사인 전문 매거진 팝사인에 기고를 해오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어떤 인연이 있었나요

6년 전 간판용 서체를 조사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우연한 기회로 팝사인에서 간판용 서체에 대한 연재기사를 의뢰 받았습니다. 디자이너 입장에서 가볍게 간판 사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 것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게 된 것입니다. 팝사인에서 저처럼 오래 연재한 사람은 없다고 하는데, 제가 글을 잘 쓰는 편은 아니고, 폰트디자이너의 시각으로 바라 본 표현이 사람들에게 어필되었나 봅니다. 그 동안 지역별, 분야별로 간판 서체에 대한 이야기를 끄집어 내면서 손수 사진도 찍고, 직접 자료를 조사하고 정리하면서 저에게도 많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산돌커뮤니케이션 이호

▲ 팝사인에 연재되고 있는 이호의 글. 글을 잘 쓰시겠다는 말에 손사래를 치지만 6년간 쌓인 내공으로 글 솜씨 역시 상당한 수준

폰트디자이너로서 국내 폰트시장의 미래에 대해 많은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 국내 폰트시장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생각이 있으시다면

지금까지 폰트시장이 양적으로는 풍부해졌지만, 질적으로는 큰 발전이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크고 작은 폰트회사들이 생겨나고, 경쟁이 심화될 것이기에 이 같은 상황은 당분간 계속 이어질 것입니다. 특히 기업전용서체 시장의 경쟁은 더욱 심화되어 저가수주 경쟁의 우려까지 보이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지향해야 할 것은 양적인 팽창이 아닌 질적인 성숙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의 폰트를 만들어도 사용자들과 개발자들 양쪽에 모두 가치가 있는 작업들이 필요합니다. 한글 본문체에 대한 꾸준한 연구가 이어져야 하는 것도 하나의 예가 될 수 있습니다. 이는 당장에 적은 돈보다는 폰트시장 전체의 가치를 높이는 일이 될 것이므로, 결과적으로 업계와 사용자들 모두에게 이득이 될 것입니다.

현재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 주신다면

우선 얼마 전에 출시한 산돌 헤드라인 시리즈의 후속 시리즈를 제작 중에 있습니다. 동아시아 도시에 이어 이번에는 유럽의 도시들로 구성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기업전용서체로는 래미안체에 대한 시안을 제작 중에 있습니다. 이는 아파트 브랜드로는 처음 시도되는 것으로 그만큼 조심스럽고 기대도 큰 프로젝트입니다. 요즘 아파트들은 타운 형태로 하나의 작은 마을을 형성한다고 볼 수 있는데, 그것을 대표하는 서체가 만들어진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폰트디자이너로써 미래의 다짐과 역할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최근에 기획, 마케팅 쪽으로 많은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디자인은 물론이고 기획력과 마케팅 능력도 겸비해야 미래에도 경쟁력 있는 디자이너로 남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디자인은 혼자만의 작업이 아닙니다. 아무리 빼어난 디자인이어도 클라이언트가 만족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반 쪽짜리 디자인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디자인 자체의 품질이지만, 이제 그에 못지않게 디자이너 자신과 자신의 디자인을 마케팅 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할 때입니다. 조금 전에도 말씀 드렸듯이 클라이언트에게 가치를 안겨주고 다시 찾게 만드는 것. 이런 경험들이 축적되면 이름만으로도 이 분야에서 신뢰감을 주는 하나의 브랜드, 즉 브랜드 이호로서의 나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나아가서는 한글 디자인 발전에 필요한 것이라면 모든 것을 수용하고 소화할 수 있는 열린 자세로 브랜드 이호가 훗날 한글 디자인의 중심 가치로써 남겨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출처 : https://www.fontclub.co.kr/Magazine/MagazineView.asp?boardtype=6&subtype=&boardnum=6922
2010/08/31 10:08 2010/08/31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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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커뮤니케이션 디자이너 우베 뢰쉬

블랙과 화이트의 짝짝이 신발. 우베 뢰쉬(Uwe Loesch)의 첫 인상은 조금은 괴상하기까지 하다. 단순히 유쾌하기 때문에 그렇게 신는다며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하는 그는 자신을 커뮤니케이션 디자이너라고 소개한다. 디자인의 목적이 보다 나은 커뮤니케이션을 위함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1943년 태생으로 현재 그래픽 디자이너들의 대선배 격에 속하는 연륜을 지니고 있지만 그의 디자인 에너지만큼은 여전히 누구보다 젊고, 활발하다. 유쾌한 커뮤니케이션 디자이너 우베 뢰쉬와 그의 짝짝이 신발처럼 때로는 진지하고, 때로는 유머러스 한 그의 작품들을 함께 소개한다.

인터뷰, 글. 길영화(barry@sandoll.co.kr)

유쾌한 커뮤니케이션 디자이너 우베 뢰쉬

폰트클럽 독자들에게 간단한 소개 부탁 드립니다.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커뮤니케이션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는 우베 뢰쉬(Uwe Loesch)입니다. 저의 아내가 한국사람이어서 그런지 폰트클럽 한국 독자들이 더욱 반갑게 느껴집니다. 현재 AGI(Alliance Graphique Internationale)와 ADC(Art Directors Club for Germany)의 멤버로 활동 중 이고, 1990년부터 부퍼탈 대학교(University of Wuppertal)에서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또한 TDC(Type Directors Club New York)에서 여러 차례 수상 경력이 있고, 세계 유수의 뮤지엄에서 지속적으로 전시회를 열고 있습니다.

항상 신발을 블랙과 화이트 하나씩 신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30년이 넘게 이렇게 블랙과 화이트 하나씩을 신었는데, 사실 깊은 뜻은 없습니다. 단순히 재미있기 때문이죠. 때로는 자기비하적,자기자극적인 표현이 유쾌함을 가져다 주기도 합니다. 저에게 신발은 그런 표현 중 하나입니다. 굳이 의미를 부여하자면 음양의 조화, 혹은 이분법의 표명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유쾌한 커뮤니케이션 디자이너 우베 뢰쉬

◀ 항상 블랙과 화이트의 신발을 함께 신는 우베 뢰쉬. 그 이유는 단순히 유쾌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디자이너로써 국제적인 명성을 가지고 계신데, 지금의 위치에 자리하기까지의 이야기가 듣고 싶습니다.

60년대 말, 뒤셀도르프의 피터 베렌스 아카데미(Peter-Behrens Academy)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한 후 바로 ‘studio for visual and verbal communication’라는 이름의 개인 디자인 스튜디오 를 설립하였습니다. 이곳에서 편집디자인을 시작한 것이 제가 디자이너로 경력을 쌓는 첫 발걸음이었습니다. 학교 다닐 때 출판사에서 프리랜서로 일했던 경험이 있어 처음부터 독립해서 일하는 것에 큰 무리는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1983년 정치문학 극장인 ‘Das Kom(m)oedchen’의 의뢰를 받아 작업한 포스터 작품인 ‘Die Sache Mensch’가 국제포스터비엔날레에서 대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 포스터는 적은 돈으로 좋은 포스터를 만들어야 했던 상황 속에서 수많은 창조적 고민을 거쳐 만들어진 작품으로 제 이름을 국제적으로 알리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유쾌한 커뮤니케이션 디자이너 우베 뢰쉬

유쾌한 커뮤니케이션 디자이너 우베 뢰쉬

▲ Die Sache Mensch
- Political cabaret "Das Kom(m)odchen", Dusseldorf
(119 x 168 cm, 1983).

▲ Fly By
- PAN kunstforum niederrhein, Emmerich
(84 x 119 cm, 2003).

오랜 시간 수많은 작업을 해오셨을 텐데, 스스로 생각하는 베스트 작품이 있다면 소개 부탁 드립니다.

최고의 작품을 뽑으라면 언제나 제 대답은 ‘가장 최근에 한 작품’ 일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흥미로웠던 작업을 묻는다면 ‘Fly By’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은 ‘PAN kunstforum niederrhein’ 뮤지엄에서 열렸던 제 개인전을 위한 포스터입니다. 전시가 열렸던 곳은 독일 북부 에머리히(Emmerich )의 작은 마을 이였는데, 드넓은 풀밭에 암소들이 거닐던 평온한 풍경을 가진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유독 제 눈에 띈 것은 주변을 날아다니던 수많은 파리들이었고, 이 모습은 곧바로 포스터의 모티브로 이어지게 됩니다.

파리들과 문자들이 어지럽게 어우러진 포스터는 무질서와 질서의 원칙을 따릅니다. 파리들과 문자들은 서로 각각의 질서에 따르고 있는데, 이 둘이 부딪혀 혼란스러운 무질서한 형태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또한 파리들에게도 새로운 폰트로써 ‘방황하는 네덜란드인(Flying Dutchman)’ 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어찌 보면 단순히 월페이퍼처럼 보이기도 하는 이 포스터는 현대 타이포그래피에 대한 독특한 반란이기도 했습니다.

지금까지 일을 하면서 자부심이 느껴졌던 에피소드가 있다면?

1984년부터 제 포스터 중 ‘Punktum’ 등 몇 가지가 MoMA(Museum of Modern Art New York)에 반 영구적으로 전시되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뮤지엄이 제 작품을 그렇게 오랜 시간 전시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저를 뿌듯하게 만듭니다.

유쾌한 커뮤니케이션 디자이너 우베 뢰쉬

◀ PUNKTUM1
- Kirschbaum Laserscan Dusseldorf
and Offsetdruck Team Dortmund
(84 x 119 cm)

유쾌한 커뮤니케이션 디자이너 우베 뢰쉬

◀ PUNKTUM2
- Kirschbaum Laserscan Dusseldorf
and Offsetdruck Team Dortmund
(2.52 x 3.56 m)

많은 디자이너들이 자신만의 작업스타일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베 뢰쉬만의 스타일이 있다면 어떠한 스타일인지 궁금합니다.

저는 한가지 아이디어를 고집하지 않습니다. 특히나 처음 떠오른 아이디어를 끝까지 밀고 나가는 일은 거의 없죠. 일단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그 아이디어에 대한 대안을 스케치를 통해 계속해서 생각하고 발전시킵니다. 그리고 나서 다시 처음의 아이디어와 비교하면서 좀 더 나은 대안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방식으로 작업을 진행합니다.

그렇다면 디자인 영감은 주로 어디에서 얻으시나요?

주로 릴렉스(Relax) 한 상태에서 많은 아이디어가 떠오릅니다. 그래서 일 못지 않게 휴식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무언가를 얻겠다고 며칠을 고민하기도 하지만, 그럴 때보다 내 자신을 긴장이 완화된 상태에 놓았을 때 보다 더 창의적인 생각이 얻어지는 것 같습니다.

유쾌한 커뮤니케이션 디자이너 우베 뢰쉬

유쾌한 커뮤니케이션 디자이너 우베 뢰쉬

▲ Exhibition of Ahn Sang Soo
- Klingspor Museum Offenbach
(59.4 x 84 cm, 2008).

▲ Germany and Korea
- useum fur Kunsthandwerk Frankfurt am Main
(84 x 119 cm, 1997)

유쾌한 커뮤니케이션 디자이너 우베 뢰쉬

유쾌한 커뮤니케이션 디자이너 우베 뢰쉬

▲ The Art of Fine Type
- Klingspor Museum Offenbach
(59.4 x 84 cm, 2006)

▲ Finale. Exhibition of the Diploma works of the dep.
- Communication Design at the University of Wuppertal
(84 x 119 cm, 2007)

디자이너에게 창의성은 상당히 중요한 덕목이라 여겨지는데, 자신만의 창의성을 독자들에게 표현한다면?

‘창의성’이라는 말 자체가 의미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사람은 많거나 적거나 창의성을 지니고 있죠. 또한 누가 가르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어디서 배울 수 있는 성질의 것도 아닙니다. 아마 저는 남들보다 조금 많은 창의성을 가지고 있는 것뿐이고, 이것은 제가 세상에 태어나면서 받은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디자인을 작업하고 접해보셨을텐데, 우베 뢰쉬가 생각하는 ‘좋은 디자인’이란 무엇인가요?

좋은 디자인에 대한 기준은 지극히 주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좋고 나쁜 디자인에 대해 누가 정해놓은 기준은 없습니다. 단지 사람들은 자신들의 문화적 경험에 의존해 좋고 나쁨을 판단할 뿐이죠. 그러나 어느 세대와 사회를 막론하고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고 발전하는 디자인은 항상 좋은 평가를 받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디자인은 훌륭한 커뮤니케이션 도구가 될 것입니다.

유쾌한 커뮤니케이션 디자이너 우베 뢰쉬

유쾌한 커뮤니케이션 디자이너 우베 뢰쉬

▲ Das Auge des Gedankens Helfried Hagenberg
- Klingspor Museum Offenbach am Main
(59 x 84 cm, 2010)

▲ Living Stones
- Ruhr Museum, Essen
(84 x 119 cm, 2009)

유쾌한 커뮤니케이션 디자이너 우베 뢰쉬

유쾌한 커뮤니케이션 디자이너 우베 뢰쉬

▲ Love, Art & Agony.
- Hommage a Frida Kahlo & Rodrigo Rivera
kahlorivera 100, Mexico
(84 x 119 cm, 2008)

▲ Durer war auch hier
- pan Kunstforum Niederrhein, Emmerich
(84 x 119 cm, 2008)

유쾌한 커뮤니케이션 디자이너 우베 뢰쉬

유쾌한 커뮤니케이션 디자이너 우베 뢰쉬

▲ 100 best posters 2008
- Germany, Austria, Switzerland red dot design Museum,
Essen Zollverein
(84 x 119 cm, 2009)

▲ Design on Stage. Winners reddot award: product
design 2008
- reddot design museum, Essen
(4 x 119 cm, 2008)

인터뷰 중 휴식을 중요시한다는 얘기가 생각나는데, 혹시 디자인 외적으로 가지고 있는 취미가 있으신가요?

디자인과 아예 관련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여행을 좋아합니다. 특히 일반적인 관광보다 모험적이고 익사이팅한 여행이 좋습니다. 이미 몇 차례나 사하라 사막을 다녀왔고, 파키스탄의 카이버패스(Khyber Pass)도 다녀왔죠. 중국 천안문 광장도 좋은 여행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또한 저는 강연이나 심사, 세미나, 전시 등을 이유로 전 세계 곳곳을 돌아다닐 수 있는 기회가 많습니다. 그럴 때마다 다양한 문화를 몸소 체험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짧게 말씀해 주세요.

최근에 에센(Essen)에서 개최한 ‘폴크방 뮤지엄 내 포스터 미술관(German Poster Museum in the Museum Folkwang)’ 전시회를 무사히 마치고 지금은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쉬면서 몇 가지 구상 중인 프로젝트가 있습니다. 항상 해왔던 전시회 계획도 있고, 그 동안 포스터와 북 디자인을 하면서 함께 작업했던 타이포그래피 디자인만 모아서 책으로 엮을 계획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갓 출발한 디자이너와 디자이너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선배 디자이너로써 조언 부탁 드립니다.

스스로 비판적 사고를 가지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자신의 아이디어와 레이아웃이 남들에게 어떻게 보여지는지, 단순히 꾸밈에만 치중한 것은 아닌지, 순수함이 아닌 표절에 가까운 것인지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가지고 돌아볼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현명한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컨셉을 가지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학생들은 되도록 많은 공모전 등을 통해 경험을 쌓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의 컨셉 도출부터 완성까지의 과정을 많이 해볼수록 좋습니다.

하나 덧붙이자면, 자신을 믿으세요. 디자인을 넘어 삶이 존재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출처:https://www.fontclub.co.kr/Magazine/MagazineView.asp?boardtype=6&subtype=&boardnum=6823
2010/08/18 14:50 2010/08/18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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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주변에 내가 아끼는 사람들...
이런류의 기사는 자주 나주었으면 좋겠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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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을 사용한 지 어느새 15년이 되어가는데 생각해보면 거의 2년마다 최신 기종으로 바꾼 것 같다. 휴대폰의 사양은 매년 좋아져 카메라보다 잘 찍히는 휴대폰이 있는가 하면, 요즘 대세인 스마트폰은 인터넷까지 가능해져 ‘걸어다니는 노트북’이라 불릴 정도다. 그런데 이렇게 진화된 휴대폰에 15년째 거의 변화가 없는 것이 있다면 문자메시지(SMS)를 이용한 광고 및 마케팅 기법이다.

김소영 라온엠씨 신규사업팀장 sykim@laonmc.com


엄밀히 말하면 문자도 조금씩 진화하긴 했지만 40자 텍스트에 한정이 되어 있어 감성이나 효과적인 의미를 전달하기에는 충분하지가 않았다. 과연, 표현하고자 하는 감성이 충분히 담기면서도 고급스럽고 효과적인 문자 메시지는 보낼 수는 없는 것일까? 아마 모바일 마케팅에 관심이 있는 대부분의 마케터들이 끊임없이 고민하던 문제였을 것이다. 물론 광고 비용을 생각하면 SMS만한 수단을 찾기도 쉽지 않다. 하지만 대출광고나 성인광고와 뒤섞여 한 덩어리로 싸구려 취급을 당해도 할 말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멀티미디어메시지(MMS)는 즉각적이면서도 고품격의 느낌으로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장점으로 인해 새로운 모바일 마케팅 수단으로 떠오르고 있다. 컬러 MMS 전송 사이트 ‘엠토스트’의 개설을 준비하면서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바로 이러한 불편함과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는 손쉬운 에디터를 개발하는 것이었다. 사용자가 문자를 보내는 상황을 미리 카테고라이징 해두고 카테고리에 맞는 MMS 서식을 쉽고 빠르게 편집, 전송할 수 있도록 구성해 개인이나 소상공인까지 손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MMS를 대중화하는 데 집중했다.

우리는 누구나 살아가면서 승진, 취업, 생일, 결혼 등의 경조사를 이유로 문자메시지를 보낸다. 또 물건구매, 서비스 가입, 단골고객을 위한 특별 이벤트 등을 이유로 수많은 문자메시지를 받는다. 이럴 때 스팸 취급받는 40자 문자가 아닌, 감성과 특별함이 들어있는 컬러이미지 MMS로 마음을 대신하는 것은 모바일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센스가 아닐까.

휴대폰 이용자가 늘어감에 따라 모바일 마케팅의 필요성 또한 점점 커지고 있다. 이번에 개발한 엠토스트가 모바일 감성 마케팅의 대중화에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김소영 라온엠씨 신규사업팀장 sykim@laonmc.com
http://www.etnews.co.kr/news/detail.html?id=201005240283
2010/05/25 13:38 2010/05/25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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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디자인의 심장, Jonathan Ive

Posted 2010/05/04 09:40, Filed under: People
독창적인 신기술과 디자인 그리고 마케팅 기법으로 세상을 바꾸는 애플입니다. 물론 스티브 잡스가 정점에 있습니다. 잡스와 애플의 성공에는 날고 기는 수많은 천재적 엔지니어가 있기도 하지만 초연하게 있는듯 없는듯 쿠퍼티노 비밀던젼의 심장부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디자인팀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엔지니어, 마케팅 담당들을 제치고 디자인팀이 애플의 핵이라는 주장에 대한 이유를 지금부터 펼쳐보겠습니다…^^

수만명의 직원을 가진 애플이지만 디자인팀은 단 12명 남짓의 멤버들로 구성돼있습니다. "죠니"라는 애칭의 영국인 조나단 아이브가 팀장이고요. 이 사람이 영국에 한번 뜨면 팬클럽 젊은이들이 공항까지 마중나올 정도로 대단한 산업 디자인게의 거물입니다. 패션 디자이너도 록스타도 아닌데 팬들이 만들어놓은 매니아 사이트가 있을 정도입니다. 대중적 인기와 관심을 집중받지만 실제는 아주 얌전한 사람입니다. 공공장소에 등장하는일도 별로없고…잡스가 화려한 프레센테이션 기법으로 애플의 신제품을 소개하며 대중을 사로잡지만 아이브는 그 뒤에서 말없이 잡스를 튼실하게 지켜주는 사람입니다. 스컬리가 뽑은 사람이지만 잡스에 의해 다듬어진 보석 조너던 아이브입니다. 두 사람의 묘한 관계도 재밌습니다.

Industrial Design

산업 디자인을 잠깐 이야기해보죠. "Not too much, not too less"란 말이 있습니다.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게하라는…사람들이 사용하는 물건을 디자인하는데 그것이 마치 피카소 같은 추상적 기법이나 앤디 워홀의 현란한 컬러가 들어가면 좀 과하죠…그렇다고 그냥 되는대로 만들수도없는 것이고요. 디자인은 일단 필수입니다. 그러다보니 바우하우스로 시작된 독일의 미니멀리스틱 디자인이 많은 디자이너들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70년대 까지만해도 산업디자인 분야는 제조업에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일본의 "귀엽고 애쁜 디자인"이 있었다면 미국의 "투박한" 실용적 디자인이 있었죠. 이때 그나마 사람들의 눈길을 끈게 독일의 가전사 Braun이었습니다. 자동 면도기에서부터 주방기기 등…미니멀리스틱 디자인을 꽃피운 회사입니다.

오래전에 독일 여행을 갔었습니다. 돈을 절약하느라 프랑크푸프트의 허름한 호텔을 찾아습니다. 6층 고딕양식의 남루한 건물이었죠. 화장실만한 방에 옷장보다 작은 샤워실…ㅋㅋ 하지만 정말 놀랐습니다. 겉에서 본 오래된 구닥다리 빌딩의 흔적은 사라지고 마치 비행접시 침실에 들어간 초현대식 방이었습니다. 문고리에서부터 전기불 스위치 등…탁월한 공간배치와 순한 연녹색으로 시작되는 가구와 벽색 등 정말 대단한 경험이었습니다. 모든 디자인에서 미니멀리스틱한 심미주의가 배어나오는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자동차에서부터 문방도구까지의 독일 제품 디자인이 남다르다는 생각을 합니다.

반면 미국에는 디자인적으로 이렇다할 전통이없었습니다. 실용주의 흐름이 너무 강해 지금까지도 그런 트렌드는 이어집니다. 쉽게 사용하고 빨리 버리고 편하기만하면 된다는…ㅋㅋ 하지만 요즘은 다릅니다. 애플이 있죠. 것두 이론의 여지없이 세계적으로 가장 앞서가는 디자인감각을 가진 회사입니다. (이쯤되면 제가 애빠라고 불릴만하죠? ㅋㅋ 동의하던 않던…사실을 말하는건데…이런 사실관계를 외면하면서 애빠를 멍청한 족속으로 이해하진 말아주시길…ㅋㅋ)

스티브 잡스의 완벽주의를 구현해주는 디자인 팀장 "죠니"가 애플의 뉴욕 매해턴 리테일 매장에 장식용으로 갖다놓은 이태리 대리석을 봤습니다. 그는 관계자를 설득해 뉴욕 매장의 대리석을 본사로 보내라고 합니다. 대리석의 결을 만져보고 그 결의 패턴을 그려보고 이 대리석을 갖고 무슨 디자인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왜 그렇게 고민을 해야했을까요?

한 일화가 있습니다. 잡스의 성질 유명하죠…ㅋㅋ 한번은 잡스가 디자인팀을 모두 모아놓고 일갈했습니다. 새로운 맥을 디자인하는데 "절대로 절대로 나사하나 있어선 안된다"고 했죠. 프로토타입이 만들어졌습니다. 헌데 이 프로토타입 맥의 손잡이 아래로 나사 하나가 발견됐습니다. 그 부분을 디자인했던 사람은 안타깝게도 잡스에게 그 자리에서 해고 당했습니다. 한때 애플의 디자이너였고 현재 Nike사의 디자인부 Advanced Innovation Division의 책임자인 레이 라일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가장 완벽을 추구하는 디자인 감각의 유일무이한 회사가 애플이다.

Odd Couple or Twin?

아이브는 잡스와 매일 독대하는 사이입니다. 사실 잡스가 애플서 하는 일중 70%가 디자인팀과의 회의입니다.^^ 두 사람은 몸은 다르지만 한배에서 태어난 쌍둥이입니다. 둘다 자신의 사생활을 드러내지 않고 은둔생활을 하고 둘다 완벽주의자입니다. 둘다 부자이지만 가장 겸허하게 일반인처럼 살고 있습니다. 둘다 양복보단 티셔츠에 청바지를 좋아하고요. 차이점은 잡스는 키노트를 좋아하지만 아이브는 맥을 만들 재질을 만져보는것을 더 좋아합니다. 더 중요하게는 둘다 시대정신을 이끌어주는 제품과 제품 디자인의 창조에 자신의 삶을 헌신하고 있습니다.

물론 아이브는 절대로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지 않습니다. 항상 같은 이야기지만 그는 "애플 디자인팀의 성공"이라고 되풀이합니다. 전세계 컴퓨터 업계를 리드하는 애플의 디자인팀에 왜 12명 뿐이없을까요. 아이브의 설명입니다. "창조적 디자인 일을 하는데 사공이 많을 필요는 없다. 주어진 목적을 가장 아름답게 가장 독특하게 가장 경제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전체 팀원이 아이디어를 내고 그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면서 애플의 디자인은 완성된다."

12명 팀원의 평균 연봉은 2007년 현재 20만달러입니다. 업계기준으로 보면 애플 디자이너들의 연봉이 2배 많습니다. 대신 스스로 노력하는 업무량은 세배 네배겠죠…ㅋㅋ 이들은 같은 장소에서 함께 일합니다. 물론 독자적인 방도 있지만 협력하는 일이 대부분이라 랩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많습니다. 애플 일 반 직원들은 디자인팀이 어디에 있는지 조차 모릅니다. 비밀주의죠. 하나의 신제품을 만들기 위해 재질을 확보하고 이 재질을 손으로 만지면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결과물을 상상합니다. 어떤 모습일까…그 결과물을 향해 팀웍으로 똘똘 뭉쳐 달려가는 겁니다. 이들은 시행착오를 겪습니다. 그럼 다시 시작합니다.

아이브는 "애플에서 디자인팀은 돈을 벌기위해 존재하지 않는다"며 "하나의 완성된 작품을 만드는게 첫째 목적"이라고 합니다. 이론 이론 ^^…안드로메다 제조회사 애플이야기입니다. 일반기업에서 이런 말하면 쫓겨납니다. 하지만 애플에는 잡스가 있고 이런 환상의 디자인 팀이 스스로 결집하도록 이끌고 있습니다. 애플 디자인 팀은 결과물의 완결성에 100% 자신감을 갖습니다. 그만큼 완벽을 위한 노력을 했기 때문이죠. 한 예로 12명의 팀원이 수개월을 단 한가지 디자인에 집중합니다. 최초 아이팟 모델의 흰색을 보다 질감 높은 색을 띠게 하기 위해 하얀색 플라스틱위에 어떤 재질의 코팅을 입힐것인가를 연구했답니다. 그렇게해서 나온것입니다. 또 가장 최신의 아이맥 27인모델의 "스와이블 힌지"…모니터 지지대죠…이거 하나 디자인하는데 6개월이 걸렸답니다.

애플 제품이 몇개나 됩니까? 얼마안되는 제품 하나하나에 이런 시간과 투자가 투입되는데 이보다 외형적으로 더 큰 HP, Dell, Ms가 자사 제품의 디자인에 투입하는 노력은 어느정도일까요? 사실 걱정할게 없죠. 애플 따라하면 되니까…것두 잘하면 탁월한 선택입니다…ㅋㅋ

아이브가 더욱 높게 평가받는게 스스로의 재능도 있지만 12명의 팀원을 통솔하는 리더쉽입니다. 자칫 모나기 쉬운 예술가 집단을 모아놓고 한 사람 한 사람의 ego를 제쳐놓고 팀플레이를 하게 만드는 그의 실천력이 독보적인 것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천재적으로 똑똑한 사람은 많지만 여러사람과 화합하면서 팀 능력을 배가시키는 사람은 드뭅니다.

Diamond in the Rough

올해 42살의 아이브 역시 잡스처럼 특출난 학력을 갖고 있진 않습니다. 런던 태생인 그는 명문과는 거리가먼 뉴캐슬 폴리테크닉에서 디자인을 전공했습니다. 하지만 디자인에 대한 그의 정열이 누구보다 뛰어난 감각을 갖춘 노력형 인물입니다. 4학년 졸업반 시절 아이브는 디자인 컨설팅회사에서 인턴을 했습니다. 그 곳에서 아이브는 펜을 하나 디자인했습니다. 똑같은 펜인데 꼭대기에 쇠구슬을 하나 넣어 똑깍똑깍 손장난을 가능하게 만든 디자인이었습니다. 아이브를 지켜봤던 풀타임 디자이너 그라이너는 "꿈을 실현시켜주는 디자인"이었다며 "기능과 상관없이 제품에 엑스트라 감정을 품게해주는 디자인이었고 누구나 갖고 놀고싶어하는 그런 펜 디자인이었다"고 합니다. 물론 학교를 졸업하면서 아이브는 영국 디자인 전공자들에게 최고의 영예인 "로열 소사이어티 오브 아트" 최고상을 받았습니다.

그는 멀리 미국의 회사로부터 스카웃제의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제품 디자인보다 저렴한 가격이 우선하는 회사 방침에 몹시 실망한 아이브는 캘리포니아 이주를 고려했습니다. 그가 찾아간 곳은 실리콘 벨리의 루나 디자인. 이곳에서는 그는 물음표 모양의 이쁜 전화기를 디자인해 명성을 쌓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아이브의 천재성과 그를 밀어줄만한 회사는 별로 없었죠. 그러던중 92년 잡스없는 애플에 발을 들여놓게 되고 그곳에서 팀장으로 발탁되면서 PowerBook 랩톱 디자인을 기획합니다. 하지만 시기적으로 애플은 서서히 적자만 늘어가는 회사였죠. 디자인 부서에 많은 지원이 따라주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그럼에도 컴퓨터 디자인에 남다른 성취욕구가 솟아오른 아이브는 주어진 조건속에서 사람들을 놀라게하는 제품 디자인을 하나씩 선뵀습니다.

그중 하나가 애플의 최초 PDA 뉴튼이었죠. 당시 아이브와 함께 일했던 디자이너는 이렇게 말합니다. "열악한 조건속에서 모두가 불평하고 있었지만 아이브는 조용히 자신의 책상을 지키며 동료들의 도움을 이끌어냈고 또 동료들은 아이브를 신뢰했기 때문에 그를 도왔다." 어떤 성격의 소유자인지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디자인 부서에서 렌더링을 위해 사용하던 슈퍼컴퓨터까지 내다 팔 정도로 열악한 조건이었고 모두가 생존을 위해 버티고 있었을때 잡스가 돌아왔습니다. 칼바람이 불었죠. 60가지 애플제 품중 6가지만 남기고 모두 게거했죠 또 전임자들이 뽑았던 전문가들을 해고시킨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이때 아이브도 한동안 자신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모를정도로 압박을 받았을 때였습니다. 잡스는 가장 중요한 디자인 책임자를 위해 IBM 싱크패드 다지이너 리처드 새퍼, 이태리의 자동차 디자이너 지오르게토 지기아로 등을 스카웃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천재는 천재를 알아보는 법. 조용히 눈에 안보이던 죠니가 잡스의 눈에 밟혔습니다.

수천명의 직원이 해고되고 부서가 사라지는 판에 조너단 아이브는 잡스의 신뢰를 얻게됐죠. 잡스는 어느날 회의를 주재하면서 "이것이 애플이 나가고자하는 방향"이라고 설명하며 "그리고 그 방향을 조너던 아이브가 잡아줄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Insanely Great Product

이후 두 사람은 애플의 쌍두마차가 됐습니다. 잡스가 앞장서고 아이브가 밀어주고! 두 사람의 협업은 애플의 신상품 기폭제가 됐습니다. 지금까지 자신의 꿈을 펼치기 위해 조용히 참아왔던 아이브에 날개를 달아준 셈이였죠. 배경철학은 이랬습니다. 97년 당시 컴터는 여전히 일반인들에게 소원한 앞선 기술적 제품이었죠. 두 사람은 누구나 친근감을 느끼고 쉽게 만질 수 있는 컴터 설계에 들어갔습니다. All-In-One iMac 이죠.

아이브는 기술진의 개발과정을 지켜보면서 자신이 구상하는 디자인을 구체화시켜 나갔습니다. 플라스틱 재질을 사용하는데 어떻게 싸구려틱하지 않게 하면서 멋진 빛깔을 만들 수 있을까가 고민이었습니다. 아이브는 이때문에 팀원들과 함께 사탕공장을 방문해 사탕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어떻게 투명하고 이쁜 색이 만들어지지를 눈으로 확인했다죠. 또 방법을 찾아낸 이후 방법대로 구현하기 위해 어떻게 플라스틱 케이스가 나오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케이스 담당 아시아 공장을 찾아 수개월을 또 그곳에서 지새웠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색과 질감이 나타나도록…이 처럼 애플의 디자이너는 제품을 심미적으로 디자인하는것 뿐만아니라 제조공정까지 참여하고 파이널 프로덕트를 확인합니다. 결과는 당시 최초 아이맥 케이스 원가가 개당 65달러였다는…업계 케이스 평균원가가 20달러이던 시절이었습니다.

2001년 애플은 타이타늄소재의 파워북을 출시합니다. 이 때 아이브는 팀원중 2명을 선발해 특명을 내립니다. 샌프란시스코의 허름한 창고를 하나 빌려 그곳에 수만달러어치 슈퍼컴퓨터를 설치해서 디자인 렌더링을 시켜더랬죠. 6주 동안의 비밀 작업이었습니다. 그런후 아이브는 아시아의 파트너회사를 방문해 와이드스크린 엘씨디 패널 디자인을 조사해 어캐하면 이 패널을 타이타늄에 장착시킬것인가를 고안했습니다. 결과는 깨끗하고 간결한 포스트 모더니스틱 쿨 파워북이었습니다!! 뿐만아니라 하얀색 아이맥 와이드 스크린 디자인까지 이때 완성했죠. 아이브가 디자인을 책임지고 잡스가 업계 스탠더를 한단계 두단계 높이는 작업이 착착 진행된 것입니다.

아이브의 디자인은 여러가지로 집약됩니다. 포스트 모더니스틱, 미니멀리스틱, 리트로스펙티브(클래식컬하다는 표현), 유일무이한 질감(Texture) 여기에 마지막으로 Fit & Finish(일체감)로 압축됩니다. 뿐만아니라 엔지니어링의 획기적인 제조기법이 등장합니다. 디자인에 맞춘 하드웨어이다보니 당연한 결과죠. 그 어떤 매스 프로덕션 제조사에서도 이런 일을 감행하지 못합니다. 우선 비용 때문에 생각도 못하죠. 또 근시안적인 마케팅 결과를 바라보니 도전조차 못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업계 사고방식을 뛰어넘는게 애플이고 남들이 생각조차 못하는 방법으로 성공할 수 있따는 모범사례를 잡스와 아이브스가 입증하고 있습니다.

재미난 사실은 애플에 납품하는 아시아의 공장들이 애플과 일하는 방식을 선호한다고 합니다. 결과에 대한 엄격한 스펙, 치밀한 제조 공정, 불량률의 최소화 등 결국 애플이 업계를 발전시켜나가는데 최전선에 서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런 과정속에서 실패도 있었습니다. G4 Cube는 투명 케이스에서 발생하는 균열을 미쳐 못알아냈고 아이팟 나노의 스크래치 문제 배터리 문제 등…하지만 장기적으로 애플이 혁명적이고 획기적인 insanely great product를 만들어냈다는데 이론을 제기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http://bit.ly/9Pa5vH

2010/05/04 09:40 2010/05/04 09:40
  1. # 암스 2010/05/04 10:19 Delete Reply

    얘 생긴게.. 프리즌브레이크에 석호필 형 같은데..

  2. # bobozzang 2010/05/05 14:31 Delete Reply

    나도 그렇다고 생각하고 있음.
    외국사람들....다들 기본은 잘생겼단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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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뱅글 엉덩이: BMW 7시리즈에 처음 선보인 디자인

[뉴스 쏙]


자동차 디자인 혁명가 뱅글, BMW에 사표 주목

차에 보톡스 대신 주름살 입혀…한국행 소문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자동차 디자이너를 넘어 가장 유명한 산업디자이너로 불리는 자동차회사 베엠베(BMW)의 디자인 총책임자 크리스 뱅글(53)의 움직임에 세계 자동차업계의 눈길이 쏠리고 있다. 17년간 몸담아 온 베엠베에 최근 돌연 사표를 낸 것이다. 업계에선 그의 거취를 놓고 여러 설이 무성하다. 현대자동차가 그의 영입에 적극적으로 나선다는 미확인 추정도 나돈다.

뱅글이 시도한 새 베엠베 시리즈들은 기존 자동차와는 다른 파격적인 디자인으로 발표 초기 논란을 일으켰다. 하지만 결국 새 베엠베는 라이벌 벤츠를 판매량에서 앞서며 뱅글이 옳았음을 입증했다. 2000년대 자동차 디자인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디자이너로 평가받는 그의 디자인 세계와 성과를 알아본다.

베엠베의 디자인 대장, 크리스 뱅글은 사표를 던지면서 자동차를 넘어 새로운 분야로 뛰어들 것이라고 했다. 역시 특이한 사람이다. 한국인의 눈엔 무모해 보일 정도다.

하지만 놀라운 일이 아니다. 뱅글은 이력부터 평범하지 않다. 대학(미국 위스콘신대)에서 인문학을 전공하고, 이어 산업디자인(미국 아트센터 대학)을 전공했다. 이런 배경 때문인지 그의 인터뷰는 다른 자동차 디자이너와 확실히 다르다. 인문학자처럼 논리가 똑 떨어지고, 쉽고, 스타일이나 유행보다 인간과 문화에 기반한다.

자동차 디자이너를 만나면 꼭 이런 질문을 했다. “요즈음 차들은 너무 멋을 부린다. 당신의 차도 그렇지 않나?” 디자이너들은 호탕하게 웃거나, 한참을 망설이거나, “철판 가공 기술이 발달해서 그렇다”고 차분하게 답하거나, “정말 그렇게 보이나? 나는 안 그런데”라고 뒤틀거나, “고맙다. 그렇게 봐줘서”라고 김칫국 비슷한 것을 마시기도 했다. 크리스 뱅글은 주저없이 “제아무리 잘 달리는 베엠베라도 생애 80%는 정지해 있다. 그래서 자동차는 그 자체로서 아름다워야 한다”고 답했다. 명문이었다.

베엠베 디자인연구소에서 매진하던 그가 유명해진 것은 2001년. 당시 출시된 4세대 베엠베 7시리즈 디자인이 혹평을 받으면서부터다. 그는 욕을 심하게 많이 먹었다. 7시리즈의 판매가 경쟁모델인 벤츠 S클래스에 밀리는 상황에서 암살 협박까지 당했다고 했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침묵과 함구 속에서 2년 뒤 새로운 5시리즈(지금 한창 굴러다니는 모델)를 발표하는 자리에 그가 나타났다. 그리고 7시리즈에 던져졌던 호된 혹평을 여유롭게 긍정했다. “당신들의 지적이 모두 맞다. 7시리즈의 디자인은 쉽게 적응하기 힘들다. 하지만 기어노브 자리에 붙은 아이드라이브나 와이퍼 스위치 자리에 붙은 시프트 레버, 버튼식 주차 브레이크도 모두 적응하기 힘든 장치들이다. 7시리즈는 그렇게 만든 차다. 시대를 뛰어넘는 혁신적인 콘셉트로 만들어졌다. 너무 새로워서 난해했던 장치들이 적응될 즈음이면 7시리즈의 디자인도 눈에 익을 것이다.”

그의 말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7시리즈에 처음 시도된 ‘뱅글 엉덩이’(Bangle Butt)는 자동차 업계의 트렌드가 되어 전염병처럼 퍼져 나갔다. 현대자동차 제네시스의 엉덩이도 그렇게 생겼다.

전문가들은 그의 디자인을 업적으로 추대하기도 한다. 볼록한 면만 가득했던 자동차 표면에 오목한 면의 가능성을 설파한 것이 좋은 예다. 2천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자동차 디자이너들은 팽팽하게 볼록한 면으로만 차를 덮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래야만 차가 보톡스를 맞은 것처럼 당차게 보이고, 태양 아래서 간결한 반사면을 만들어 내며, 프레스로 찍어낼 때도 무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뱅글은 5시리즈와 Z4 등에 오목면과 볼록면을 교차시키며 고정관념을 힘껏 비틀었다. 예상대로 생산이 쉽지 않았고 반사된 빛도 여기저기 흩어졌지만, 그 모습은 훨씬 당당하고 독보적이었다. 이후 오목한 면은 트렌드가 됐다. 현대자동차 아이써티(i30), 링컨 엠케이에스(MKS) 등의 어깨 부분(측면 유리창 바로 아랫부분)이 그렇게 움푹 파였다. 하지만 몇 대의 베엠베와 몇 개의 트렌드로 그를 칭찬하긴 어렵다. 그의 성과를 조목조목 따지자면 신문 양면을 펼쳐도 모자랄 것이다. 디자이너답게 크리스 뱅글도 그림을 잘 그린다. 2004년 서울오토쇼로 방한한 그와 식사를 할 때 등 뒤에 A4 크기 스프링 노트를 봤다. “불편하지 않나, 등 뒤에 노트가 있던데”라고 했더니, 그제야 등에서 꺼냈다. 잘 때 빼고는 늘 등에 넣어 다닌다는 그 스케치북엔 놀라운 그림들이 가득했다.

뱅글은 멋진 그림에 감탄스러운 언변, 곤충과 비행기의 관계도 파헤칠 법한 인문학적 논리, 디자인을 향한 한없는 열정으로 무장한 천재적인 디자이너다. 최근 몇년간 베엠베의 변화가 그의 저력을 증명해 준다. 보수적인 공학박사 집단인 베엠베가 가장 멋진 회사로 진보했으니 말이다. 자동차 디자이너가 되려거든 인문학부터 공부하라고 해야 할까? 그는 잠시 지구에 떨어져 베엠베를 움직인 우주인 같다. 이제 자신의 행성으로 돌아가려는 걸까?

장진택/〈GQ〉 피처디렉터ㆍ전 기아자동차 디자이너
2010/04/06 15:32 2010/04/06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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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드TV 디자이너 김희봉

Posted 2010/01/29 10:13, Filed under: People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얼마전 친구가 사이트에 떴다면서 들어가 보라길래
접속해봤더니. ㅎㅎㅎㅎㅎ

그새 이눔 유명인사가 되어있었다.ㅋㅋ

디자인은 "느낌"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요목조목 얘기하는 친구놈이 자랑스럽다~
2010/01/29 10:13 2010/01/29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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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ypographer] David Carson

Posted 2009/09/22 09:43, Filed under: People

출처 : http://designspoon.com/main/groupbuy.php
2009/09/22 09:43 2009/09/22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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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일찍 소식이 들려왔다.
신문에 인터뷰기사가 실린다더니...드디어 실리셨나보다.. 오오~~
나날이...인기높아지는 작가님이시다..

앗..근데..
사진 너무 무섭게 나왔다! 여러분...사실....김작가님은 저렇게 무섭게 생기지 않았다구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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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밥은 어디가 맛있나, 자전거 등록은… 도쿄를 파헤치다

나름대로 잘 나가는 골드미스였던 김소영(37·사진)씨는 지난해 3월 직장에 사표를 냈다. 그는 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했고 여성잡지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다 '선영아 사랑해'로 유명한 마이클럽에서 5년여간 일하며 온라인 서비스 팀장을 지냈고, 이후 인터파크 모바일 사업팀 차장까지 거치면서 괜찮은 웹기획자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김씨는 사표 제출을 강행했다. 충동에 사로잡히기 쉬운 어린 나이도 아닌 만큼 무작정 '지른' 것은 아니다. "직장생활을 13년 하다 보니 매너리즘과 함께 심신이 소진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재충전이 필요한데, 망설이다 더 나이 들면 영영 떠나기 어렵고 사회에 복귀할 타이밍을 놓쳐 재취업도 어렵게 될 수 있죠. 미래를 생각해서라도 지금이 적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미리 염두에 뒀던 일본 도쿄로 날아갔다. 2003년 처음 일본을 다녀온 뒤 그곳 사회와 사람들, 웹 분야와 관련된 동향을 좀 더 알고 싶었고 일본어 실력도 다지려는 목적이었다. 자신의 커리어까지 고려한 '계산된 일탈'이었다. 김씨는 비자 없이 관광으로 체류할 수 있는 최대 기간인 3개월, 정확하게는 89일을 머물며 알짜배기로 체득한 도쿄 생활을 한 권의 책으로 묶었다. '안녕! 도쿄'(넥서스BOOKS)에는 객지에서 매일 아침 7시를 전후해 집 밖을 나서며 치열하게 발품을 팔았던 일상과 여행의 기록이 섬세하게 담겨 있다. 아무 연고도 없이 출판사 문을 두드렸는데 흔쾌히 출간이 결정됐다고 한다.

이 책은 한 달 이상 도쿄 생활을 하려 할 때 필요한 자상한 가이드 역할을 한다. 장기숙박을 원할 경우 어떤 숙소가 부담 없는지, 자전거는 어떻게 등록해야 하는지, 초밥은 어디가 맛있는지, 심지어 귀국할 때 선물은 무엇을 사는 게 좋은지도 안내한다. 일명 '스미마셍 스피릿'과 쓰레기 분리 문화 등 일본 풍습도 적절히 가미돼 있어 초심자들에게 간편하면서도 꼼꼼한 길잡이 역할을 한다.

김씨는 "독자들한테 36세에 어떻게 그렇게 훌쩍 떠났느냐, 부럽다, 나도 가고 싶다 등의 쪽지이메일을 많이 받는다. 30, 40대들이 많이 자극을 받는 것 같다"라며 "그러나 나는 갑자기 사표 내고 떠나시라고 종용할 마음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그는 "깊이 생각해서 한국에서보다 더 부지런히 다니면서 알찬 시간을 보낼 준비가 돼 있는 분들만 떠나야 된다"고 강조했다. 프리랜서 웹기획자로 활동 중인 김씨는 곧 새로운 직장에 자리를 잡을 예정이다.

김호경 기자


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kmi&arcid=0921326255&cp=nv
2009/06/22 10:38 2009/06/22 10:38
  1. # 마리안 2009/06/24 10:23 Delete Reply

    뭘, 실제로도 무섭게 생겼구만

    1. # bobozzang 2009/06/24 15:24 Delete

      실제론...좀 귀엽잖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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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리나 강수진의 충고 "인생은 동그라미… 내리막 있으면 오르막도 있죠
공부도 발레도 벼락치기는 불가능 나중엔 올리브 오일을 쳐도 머리가 안돌아가요"

"지금 나이에 (공부를) 즐겨야지요. 나중에는 머리에 올리브 오일을 아무리 쳐도 안 돌아가거든요."

발레리나 강수진(42·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말에 객석은 웃음바다가 됐다. '공부에는 다 때가 있다'는 진부한 얘기도 세계적인 스타의 입에서 나오자 더 생생하게 들렸다. 강수진은 "발레나 공부나 벼락치기는 안 통한다"면서 "나는 남이 아닌 나 자신과 경쟁했고, 매일 조금씩 발전하는 데 재미를 느꼈다"고 말했다.

강수진이 26일 밤 경기도 성남아트센터에서 성남시 7개 중·고교 학생 350명에게 특강을 했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주관하는 명예교사 프로그램의 하나로, 대부분 교복 차림인 학생들은 강수진이 출연하는 성남국제무용제 갈라 공연을 본 뒤 직접 발레리나를 만났다.

발레리나 강수진은 26일 특강에서“성공한 사람일수록 일상은 규칙적이고 단조롭다”며“포기하지 않고 계속 가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고 말했다./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제공

강수진은 "중3 때 나는 새벽 4시에 일어나 남산도서관에서 공부하고 방과 후 발레 연습을 하다 저녁 때는 예습·복습을 하고 10시쯤 잤다"면서 "지금도 일과는 그때와 비슷하다"고 했다. '힘들 때 어떻게 극복했느냐'는 질문엔 "발레를 하면 거의 매일 아프기 때문에 통증을 친구로 여기게 됐다. 힘든 게 내겐 보통"이라고 답했다.

"힘들게 안 살면 나중에 기쁠 때도 얼마나 기쁜지를 몰라요. 인생은 원(circle) 같아서,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와요. 친구들하고 떡볶이 먹을 때 행복하죠? 그렇게 작은 행복에 감사하세요. 때론 울면서 다시 시작하는 거예요."

30년을 해외에서 살았고 철든 뒤론 올해 처음 생일(4월 23일)을 한국에서 보냈다는 이 발레리나는 특강 중간에 소리를 빽 질렀다. '하루에 쉬는 시간이 얼마나 되냐'는 질문을 한 남학생이 딴 짓을 하자 "남학생! 물어보고 나서…?" 하면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강수진은 "동료들은 나를 머신(기계)이라고 부른다"며 "쉬는 건 나중에 무덤에 가서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내겐 오늘 하루 열심히 사는 것이 인생 목표였고 고독이 가장 무서운 병이었다"는 강수진은 "조금씩 전진하는 느낌이라 나이 드는 게 좋다. 젊어지고 싶지 않다"고 했다.

"단계를 밟아나가는 게 중요해요. 빨리 가려고 하지 말고 거북이처럼 가요. 그럼 '쨍하고 해 뜰 날'이 올 겁니다."

성남=박돈규 기자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4/27/2009042702219.html

2009/04/28 11:26 2009/04/28 11:26
  1. # 감자도리 2009/04/28 11:32 Delete Reply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할까? 막연함이 나에겐 가장 큰 문제..
    무조건적으로 열심히 사는건 아닌거 같구.. 무엇을 향해 나아갈지 정해야 하는데..
    이제와서 이런 고민에 빠져 있다는게 우습당..;;;

    1. # bobozzang 2009/04/28 13:07 Delete

      이제와서라니~
      나도 항상하고 있는 고민이라구...
      그런고민을 하고 있다는것 자체가 건강한거지. 미래에 적응하며 준비하고 있다는것이기도 하니까~
      힘내자구!

  2. # 감자도리 2009/04/28 11:33 Delete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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